![]() |
한 남자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명예 CIA 요원 자격으로 연단에 오른다. 그의 이름은 찰리 윌슨(톰 행크스). 텍사스 출신의 민주당 하원의원이다. 연단 아래에는 그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로비스트 조앤 해링(줄리아 로버츠)과 CIA 요원인 거스트 애브라코토스(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지원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전쟁을 종식시킨 주역들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승리, 미국이 이뤄낸 세계 역사의 변화를 자축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안은 남자의 상기된 표정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렇게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시작된다.
'찰리 윌슨의 전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의 대부분은 실화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웨스트 윙'의 각본가 아론 소킨, '프라이머리 컬러스'의 감독 마이크 니콜스와 같은 정치 드라마의 대가들이 만들어낸 영화치고는 좀 싱겁다. 정치적 선택의 긴박감이나 충격적인 반전, 혹은 결단을 앞둔 정치인의 내적 갈등 등이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그건 이 영화가 이미 드라마틱한 실화의 무게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 역사를 바꾼 몇몇 정치인들의 선택이 놀라울 만큼 안이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영화는 찰리 윌슨과 조력자들의 실제 선택과 당시의 분위기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화 자체의 재미는 줄었지만, 어쩌면 별다른 고민 없이, 예상가능하게 이어지는 영화의 흐름은 당대 미국 정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재현방식일지도 모른다.
섹스 스캔들을 달고 다니며 마약 파티를 즐기는 하원의원 찰리 윌슨과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문제만 일으키는 CIA 요원 거스트, 그리고 극우 반공주의자 로비스트인 조앤의 조합은 가히 환상적이다. 반공주의, 기독교주의, 애국주의, 감상적인 휴머니즘, 여기에 자본으로 무장한 추진력이 결합되어 이들의 지극히 '정치적인' 선택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구원'으로 둔갑한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찰리 윌슨이라는 인물을 통해 휴머니즘에 호소하지만, 정치적 전술로만 그럴 뿐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본질을 건드린다. 찰리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개를 죽인 정치인의 이중성을 고발한 후 그가 선거에서 떨어진 날, 미국과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한다.
그런 감상에 뿌리를 둔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러나 소련이 패한 후,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에 대한 찰리의 요청에는 냉담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원한 국가의 이름조차 파키스탄이라고 대충 부른다. 그때서야 뒤늦게 이 순진하고 무지한 정치인은 불도저처럼 나아갔던 자신의 정치적 열정이 멈칫하는 순간을 목도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반복되는 CIA 연단에 선 찰리의 표정은 처음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여기서 미국의 군사지원이 궁극적으로 불러온 실제 파국의 결과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의 표정에서는 어느덧 자신만만함이 사라지고 어찌할 바 모르는 회의와 씁쓸함의 그림자가 불안하게 서려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덧글